성소

하늘의 옹호

KAHN0211 2016. 7. 31. 19:04

하늘의 擁護(伸寃)

본문: 7:9-11,13, 22(신원하였고), 25-26; 8:14; 7:25(항상 간구);

          히 9:23 (오염과 정결); 요일 2:1 Advocate(parakletos)

I. 도입 이야기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씌우는 일이 비일비재한 세상에서, 오해와 곡해가 범람하고 이웃이나 상대방 험담에 익숙해버린 세태에서 자기를 옹호해 주고 두둔하는 분이 있다는 것은 메마른 땅에 기다리는 단비와도 같다. 누군가 나서서 자기의 본심을 변호하고 억울한 일을 옹호하는 일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누군가 옹호, 변호하는 일이 없다면 세상을 살맛이 없을 것이다. 인간은 누군가 자기의 결백을 믿어주고 신원하여주기에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힘을 얻는다.

A. 이야기1- 초등학교 6학년 19508월 초 고향 읍사무소 앞 광장에서의 공개재판광경과 국대남씨의 잊히지 않는 변호장면, 그는 자기 재산을 투자, 일본의 폭압통치를 피해 만주로 갔다가 돌아온 어려운 가정들을 위하여 마을을 만들어 수십 채의 집 건축, 입주케 한 분으로 총살 직전위기일방의 순간에 한 사람을 살려내는 변호를 하였다.

B. 이야기2-법과대학 1학년 학생 시절 헌법학 교수가 16 여 년 일제 말엽 학병 징집, 각기 다른 전선으로 헤어졌던 친구가 찾아와 몇 차례 만난 것이 빌미가 되어 간첩 방조 혐의로 구속, 재판 받는 사건에서 변호사의 최후 변론 장면은 잊을 수 없었던 일이었다. 날라 가는 새가 싼 똥이 머리 위로 떨어진 것과 같이 재수 없는 일(다오메이설러倒黴事儿了)이라는 비유, 친구의 행적과 정체를 모른 채 반갑게 만나 대화를 한 것, 그리고 그 친구의 한국정부에 대한 은근한 비판과 유도성 질문에 응답하는 등 몇 번 이야기를 나눈 것이 빌미가 되어 간첩혐의로 몰리게 되었다는 다소 감성을 자극하는 변론 서두가 인상적이었다. 변론이 끝났을 때 우리 대학생들과 방청객들은 우레 같은 박수를 보냈다. 가슴을 후련케 하는 변호였다.

C. 이야기3-'청빈하게 살다간 김홍섭 판사'는 사도법관으로 알려졌다. 일제강점기 전북 김제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정규교육이라곤 4년제 원평보통학교(초등학교)를 마쳤을 뿐. 독학으로 중등학교과정을 수료. 그는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도쿄에 소재한 니혼대학(日本大學) 전문부에 유학했다. 유학 간 지 불과 일 년여 만에 조선변호사시험에 합격해 세상을 놀라게 하였다(1940). 귀국한 김홍섭을 부른 이는 법조계의 대선배 이며 후에 대법원장을 역임한 김병로(1887-1964) 판사였다. 김병로는 자신의 비좁은 변호사사무실을 함께 나누어 쓰자고 제의했다. 두 사람 사이의 신의를 끝까지 돈독하였다. 격동과 혼란, 굴욕으로 점철된 한국 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으면서도 그들은 법률가로서 소신과 양심을 지켜냈다. 1945년 광복이 되자 김홍섭은 법조인 사회에 몰려오는 세상의 유혹과 비리에 실망, 법조계를 떠날 생각이었다. 그러나 주변 분들의 간곡하게 만류한다, “이제 국권이 우리 한국인의 책임 아래 있는데 당신과 같은 전문가들이 더욱 수고하여야 할 때가 지금이요.” 이는 틀린 말이 아니었다. 뚝섬에서 가축을 키우며 지내는 그를 김병로 대법원장이 간청, 흙에 대한 미련과 재판에 대한 회의를 털고 법조계에 다시 복귀한다. 1948년 서울지방법원 판사를 거쳐 서울고등법원 판사, 서울지방법원 부장판사, 전주지방법원장, 대법원 판사 및 대법관 직무대리, 광주지방법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신앙에 귀의하여 많은 죄수들을 사랑으로 돌보며 신앙으로 이끌었다. 특히 그는 사형수 선교에 힘썼다. 부득이 사형 선고 내린 후 교도소 방문하여, 직책상 사형을 선고했지만 아주 미안하다고 말하고 부디 영생의 길을 구하라고 선교하는 그리스도의 사도(使徒)와도 같은 판사였다.

세상을 뒤흔들던 끔찍한 경주호 사건 공판은 홍 판사의 이런 면모를 잘 보여주고 있다. 피고인들을 앞에 세워놓고 친 자제에게 타이르듯, 온갖 정성을 다하여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것이었다. 선고하는 날 법의 이름으로 □□를 극형에.”목메어 말문이 막힌 재판장은 머리를 푹 숙인 채 한참 동안 묵념하다가 다시 말을 이어 하느님의 눈으로 보시면 어느 편이 죄인일는지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불행히 이 사람의 능력이 부족하여 여러분을 죄인이라고 선고하는 것이니 그 점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했다. 사형 선고를 받은 3명을 포함한 30여명의 피고인들은 숙연히 머리를 숙이고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당대 형사피고인들은 김홍섭판사의 재판을 받는 것이 소원이었다.

II. 하늘법정

전설적인 김홍섭 판사같은 분은 지극히 예외적이다. 세상법정은 오판도 하고 순한 양 같이 변화된 사형수도 교수대에 세울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누군가의 권고로 눈물과 호소로 피고가 새 사람이 되어도 용서가 안 된다. 그러나 하늘 성소의 법정은 다르다.

A. 다니엘서 중심이 되는 제7장의 하늘법정 (7:9-14, 21,22,26-27) - 다니엘서 12개장에서 그 문학적 교차구조상 제7장에 예언의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 2-6장까지를 수렴하고 8-12장까지를 펼쳐내는 다니엘 7장은 다니엘서의 축대와 심장이 되는 장이다. 우주 통치 사령탑. 성경학도에게 제7장은 매혹적이어서 기대와 도전을 안겨준다.

B. 심판관와 변호자

1.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 흰옷은 순결의 상징, 공정하고 의로우신 분, 흰 머리털을 태고의 표를 상징한다. 성부 하나님이 심판을 베푸신다”(10). , 심판 주재자(presider)가 되신다. 이 심판은 일련의 조사심판(심리)과 집행심판을 포괄한다. 이래야 법 집행의 공정성, 정당성 확보된다.

2. 인자 같은 이(예수 그리스도)가 우주적 통치권 받는다(7:14). 구름을 타고는 신성 상징(97:2)한다. 즉 신성과 인자가 결합된 신인이신 분이시다. 복음서에서 예수께서 인자 칭호 선호 이유는 다니엘 7장 사건에 관심을 끄시고자 하는 의도를 엿볼 수 있다.

7:13-14절에서 인자 같은 분이 옛적부터 항상 계신 분에게 나아 간 것은 그리스도의 재림하시는 사건이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성소 정결을 위해 지성소로 들어가시는 것을 나타낸다(GC 426, 480,).

세상 법정에서와는 달리 하늘법정에서 예수께서는 재판관도 되시고 변호사도 되신다.

(1) 심판관: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27 또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5:26-27). 죄를 대신 짊어지셔서 자기를 희생제물로 드리시어 죽으셨기 때문에 이런 권세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 그는 사단과의 대쟁투에서 승리하였다. 그러므로 우주에서 다른 어떤 존재도 인간세상에 영원한 심판을 내릴 자격이 없다. 다른 어떤 존재도 그 심판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분을 옹호할 수 없다.

(2) 옹호자: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옹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요일 2:1). 옹호자 AdvocateGr. 파라클레토스(parakletos) 번역어이다. 대언자를 옹호자,” “중재자또는 중보자라는 번역하는 것이 더 좋다. 교회증언은 중보자로 번역하고 있다(5T 470). 히브리서가 예수 그리스도를 하늘의 대제사장으로 고양하고 있는 점은 이 중보 옹호사역을 하시고 계시기 때문이다.

3. 증인들- 천천만만 참관천사들.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하늘의 천사들.

4. 책들: 1) 생명책. (2) 성도선행 기록한 기념책. (3) 사람들의 죄악을 기록한 죽음의 책. 이 책들의 존재가 조사를 엿보게 한다.

III. 조사심판과 재림 전 심판-이 두 가지 표현을 극명하게 대립시켜 조사심판은 혐오스럽고, 재림전 심판은 좋은 것으로 보는 이론이 교회를 혼란스럽게 한다. 조사심판은 심판의 내용상 관점의 표현이지만 그 내용을 모두 나타내지 못하는 한계성을 띄고 있다. 재림 전 심판이란 표현은 시간의 관점을 중심으로 하는 다소 포괄적인 표현이다. 재림 전에 여러 심판들을 총칭할 수도 있는 광의의 의미가 있지만, 그것보다도 특별히 2300주야 예언의 끝에 시작되는, 그러면서도 다채로운 의미가 내재된 우주적 심판을 일컫는다. 다니엘서 7:9-118:14의 심판을 더 정확하게 드러내는 표현을 찾아 고심하여 찾아 낸 용어이다. 재림전 심판은 조사도 포괄하고 있어 조사라는 의미를 배제하여서는 안 된다.

<하늘성소 법정에서의 조사심판은 십자가에서 희생제물로 드리신 그 공로를 적용하여 십자가속죄를 계속적으로 활성화시킨다 (Keeping the Cros all alive!!!).

속죄 개념- 희생제물(sacrifice)드린 십자가 속죄 ->하늘성소에서의 중보(mediation) 속죄->최후적 회복(restoration)의 구속사업의 일련의 전개 과정이다. 속죄는 이 일련의 과정을 망라하하여 범죄 전 에덴의 최후적 회복을 지향한다. 특히 속죄는 신자들이 하나님과 개인적인 인격적 관계를 회복하는 것에 그 목적이 있다. 7:9-11, 228:14은 십자가 속죄를 전제로 하고 그 속죄를 적용시키는 일을 말하고 있다. 갈보리 십자가와 그 공로와 더불어 우리를 옹호하시는 중보를 한 짝으로 연계하여 이해하는 것-이것이 예언자의 메시지이다.

IV. 하늘 법정에서 하는 일

7:9-11, 22의 심판에 관한 더 자상한 내용이 평행적 기사 본문인 단 8:14 성소 정결에 나온다. “이천삼백 주야까지니 그 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함을 입으리라 하였느니라”(8:14).

정결하게 함을 입으리라(KJV-shall be cleansed)” ṣadaq 차다크 수동태로 (1) 정결케 되다 (2) 옹호되다 (3) 회복되다의 뜻을 담고 있다.

A.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공언한 모든 자의 활동 조사

문맥에서 심판 대상은 작은뿔과 그 추종자들이다. 즉 배도한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개입이 심판으로 이어진 것이다. 작은 뿔 행위 조사 및 심판한다(7:10-11), 작은 뿔이 군대 주재 대적, 타미드(날마다 성소에서 행하는 제사의식)을 제하여 버리며, 천상성소를 헐어버린 일들(8:11), 진리를 땅에 던진 것 조사하고, 작은뿔이 하늘성소의 사역을 대신하여 지상적 대체물을 세우기 위해 저지른 잘못을 바로 잡는 일을 한다. 하나님의 일을 반대하는 자들, 작은뿔의 훼방과 성도 박해 등을 심판한다. 책들이 펼쳐져 있다는 것 자체가 조사할 증거를 담고 있다.

가짜 성도가 많은 교회에서 진짜를 판별하여 내야 한다. 조사심판에서는 그리스도에게 충성한다고 공언했던 모든 자의 기록이 검토될 것이다. 조사 목적은 하나님이나 그리스도에게 알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정당성을 우주에 널리 알리기 위해 진행되는 것, 즉 하나님께서 어떤 이들은 받으시고 어떤 이들은 거절하시는 이유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한 것에 있다. 사단은 모든 사람을 자기의 적법한 신하들이라고 주장한다. 둘째 사망이 생명책에서 이름이 도말된 그리스도인으로 자처하는 이들에게 기다리고 있다. 짝퉁이 판치는 세상이다. 짝퉁 그리스도인을 판별하는 일 없이 모든 그리스도인을 구원할 것이라는 이론의 허구성을 사랑이란 말로 덮어버리는 해석을 하는 것은 빗나갔다. 사랑을 공의와 각을 세우기 때문이다.

B. 성소 정결 – ① 작은뿔 과 그 추종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천상에서의 중보 사역이 왜곡 찬탈당하여 하늘성소가 오염되었고, 참회자들의 죄 고백이 전이되어 표상적으로 오염되었다. 그래서 정결이 필요하다. 의인의 죄가 죄책의 기록으로부터 도말되는 것은 이 성소 정결에 포함된다. (참고, 4:17 (sadaq)와 정결(taher)이 동의어적으로 사용되어 있다). 이제는 표상적 성소 봉사에서 원수의 손에 의하여 성소가 더러워진 것과 신도들의 죄가 하늘성소로 옮겨져 하늘성소가 더러워진 것을 정결케 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은 이런 것들로써 정결케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로 할지니라”(9:23). 정결한 백성을 찾고 있는 시대이다. 하나님은 몸 성전이 정결한 백성을 기다리고 계신다!

C. 사단이 비난하는 백성들의 회개와 믿음 옹호

사단은 심판 때에 예수께서 변호하시는 신자들을 하나님 앞에서 비난한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의 회개와 믿음을 옹호하신다. 하나님은 성도들을 신원하신다.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가 와서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위하여 신원하셨고 때가 이르매 성도가 나라를 얻었더라(7:22). 이들은 생명책에 기록된 성도들이다.

3:1-5 사단이 여호수아를 참소한다. 하나님께서는 사단을 책망한다. 그리고 백성을 대표하는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더러운 옷을 벗기게 하고 아름다운 옷을 입히게 하신다. 하나님의 백성이 중대한 죄를 범한 것은 사실이었다. 하나님 백성들은 포로가 되는 형벌을 받았고 이제는 다수가 회개하고 겸손하게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는 여호와의 사자(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은총을 내리고 옹호하시는 일을 하신 것이다. 스가랴는 재림 전 심판을 대쟁투적 시각으로 하늘에서 조사심판이 집행되는 과정에서 성도가 원수로부터 공격당하고 있는 것을 기록하고 있다. 하늘의 중보 옹호는 대상을 찾는 것이 아니고 대상을 새로 창조하신다.

옹호와 변호 그리고 중보-하나님의 성소 옹호, 하나님의 이름 옹호, 하나님 백성의 옹호. 이 옹호에 우주의 안전이 달려 있다.

자기 백성들을 위하여 신원하는 일= 성도들이 이 땅에서 원통하게 당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누명을 뒤집어씌우고 인터넷이나 SNS로 모함하고 비방하는 일로 고통을 당한다. 누가 이를 신원할 것인가?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인자 같은 분이 의인을 옹호, 변호하고, 악인을 구분 심판하여야 공정하다.

(사단)는 하나님께 용서와 은혜를 열렬하게 구하는 자들이 그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므로 그는 그들을 좌절시키기 위하여 그들의 죄를 그들 앞에 제시한다. 그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들을 대적할 기회를 끊임없이 찾고 있다. 심지어 그들의 가장 훌륭하고 가장 가납될 만한 봉사까지도 그는 타락한 것처럼 보이게 하고자 애쓴다. 가장 간교하고 가장 잔인한 셀 수 없는 계책들을 통하여 그는 그들을 정죄하고자 노력한다. 사람은 이 讒訴(간사하고 못된 말로 남을 헐뜯어 없는 죄를 있는 것처럼 꾸며서 고해바침)들을 스스로 대항할 수 없다. 그는 죄로 더러워진 옷을 입고, 하나님 앞에 서서 그의 죄를 고백한다. 그러나 우리의 옹호자이신 예수님은, 회개와 믿음으로 그들의 영혼을 지켜 주도록 그분께 바친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효과적으로 탄원하신다. 그분은 그들을 변호하시고, 갈보리의 강력한 논증에 의하여 그들의 참소자를 물리치신다”(5증언, 470-471).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8:1).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회개하고 나오는 자들을 하나님은 정죄하지 않는다. 그런데 인간은 비난하고 험담하기 쉽다. 사단은 1844년 이래 하늘 법정에서는 은총 아래 있는 회개한 남은 백성을 사단은 참소하여 낙심시키는 일에 광분하고 있다.

하늘법정과 달리 인간 법정에서는 옹호와 신원을 다하지 못한다. 사형수들의 폐부를 찌르는 항변, 나는 억울하게 죽습니다사형수 오휘웅 이야기-1979913일 서울구치소 사형집행장에는 치정살인범으로 판정받은 오휘웅 씨(당시 34미혼)가 앉혀졌다. 통통하고 다부지게 생긴 오 씨는 구치감 문을 나설 때 낯익은 구치소직원들에게 감사합니다”, “먼저갑니다고 인사. “유언이 있으면 하십시오”- 오 씨는 당당한 말투로. 저는 절대로 죽이지 않았습니다.”죽어 원혼이 되어서라도 누구누구에게 원수를 갚겠다는 가슴 서늘한 이야기를 했다. 사귄 여자가 불구 남편과 자녀가 있는 것을 안 오 씨가 절교하지 원한에 찬 여자가 남편과 자녀를 죽이고 그 것을 오 씨의 범행으로 넘기고 얼마 후에 자살하고 말아 원통하게도 살인범으로 몰려 교수형에 처해진 오휘웅 씨처럼 인간 법정의 신원은 불완전하다. 성도들은 원통한 일을 하늘에 직고하며 하늘의 옹호를 갈망한다. 시편에는 이런 신원을 애원하는 기도가 넘치고 있다(시편7편 등 저주시들). 하나님 말고 누가 신원하여 줄 것인가?

데살로니가 전서 4:6 “신원하여 주시는 하나님”-오늘도 예수 믿으면서 원치 않은 큰 고통을 겪는 분들이 많다. 때로는 질병 때문에 고통을 겪는다. 때로는 먹고 살기조차 힘든 고통을 당한다. 때로는 깨지고 부서진 인간관계 때문에 고통을 겪는다. 이런 분들에게 하나님의 위로, 신원하여 주심이 필요하다. 그래서 본문 4:6절에서 이 일에 분수를 넘어서 형제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고 증언한 것과 같이 이 모든 일에 주께서 신원하여 주심이라고 하신다. “신원가슴에 맺힌 원한을 풀어준다는 뜻이다. 우리가 당하는 고난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원한을 풀어주신다는 뜻이다. 정말로 우리가 믿음으로 당하는 고난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그 고난을 풀어 달라고 한다. 하나님은 성도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자녀들이 겪는 모든 일을 신원해 주신다. 사랑하는 자녀들의 사정을 다 아시고 갚아 주신다.

이 완전한 신원은 다섯째 재앙이 지나야 한다.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하니 (6:10). (다섯째 인 뗄 때 사건).

그러나 예언적 긴 기간이 지나면 신원하는 일이 일어난다.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아 그를 인하여 즐거워하라 하나님이 너희를 신원하시는 심판을 그에게 하셨음이라 하더라 (18:20).

세 친구들이 비정하게 몰아치는 논리 앞에서 욥은 하늘 중보자, 옹호자 결여를 탄식하였다. (9:33; 16:19,21-).

폴틸릭 교수의 유니온신학교 강의에서 일어난 이야기-영어에 익숙하지 않아 억센 독일식 발음에 학생들이 늘 웃자 견딜 수 없어 고통당하고 있을 때 한 제자 학생이 보낸 카드에 이런 메시지가 쓰여 있다. “교수님 힘내세요. 우리가 웃는 것은 교수님의 발음 때문이지, 강의 때문이 아닙니다. 교수님의 강의는 너무나도 훌륭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웃더라도 힘내세요. 우리 모두는 교수님을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롤로 메이 드림. 카드를 다 읽은 폴 틸릭 교수는 눈물을 펑펑 쏟았다. 그리고 저녁 식사도 거른 채 오랫동안 감동에 젖어 있다가 노트에 이렇게 기록했다. “한 사람이 한 사람의 아픔을 알아주는 것도 이렇게 놀라운데, 죄인된 인류의 아픔을 치유하러 오신 역사는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 이 때 뜨거운 가슴으로 써내려간 책이 조직신학 제2권이다.

하늘성소에서 우리의 회개를 보화처럼 보시고 사단에게 내 백성이라고 옹호하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이 약속을 믿고 일어서자. 그리고 우리도 하늘 옹호 본받는 백성이 되자. 험담, 비판, 냉랭함이 가득한 교회 안에서 옹호하고 두둔하고 믿어주면서 살아가는 것이 1844년의 메시지를 전하는 자의 자세이다. 우리는 억울함을 호소할 길 없는 상황에서 하늘의 신원을 믿고 나간다. 고통 속에서 하늘 성소를 응시하면서 삶의 길에서 자기를 괴롭힌 문제들을 풀어주는 답을 얻은 아삽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저희 결국을 내가 깨달았나이다”(73:17)라는 응답을 받자!

마지막 숨을 거두는 스데반에게 하늘 법정에서 하시는 일을 보여주시므로 힘을 내게 하신 (7:56) 메시지가 우리의 인생길의 마지막도 되게 하자.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if !supportEmptyParas]--> (2016. 7.30. 대학교회 강론 시 시간관계로 못다한 부분까지 포함시켰습니다. )<!--[endif]-->